1953년 10월 1일 미국 워싱턴에서 이승만 대통령(뒷줄 가운데)이 지켜보는 가운데 변영태 한국 외무부 장관(왼쪽)과 존 포스터 덜레스 미국 국무장관이 한·미상호방위조약 조인식을 갖고 있다. photo 위키피디아 (조선일보)
한국과 미국이 군사적 동맹 관계를 약속한 한미상호방위조약이 10월 1일로 체결 70주년을 맞는다. 6·25 전쟁의 포화를 뚫고 탄생한 한미동맹은 70년간 북한의 도발을 막고 대한민국이 누리는 자유와 평화, 번영의 토대가 됐다. 한미동맹이 없었다면 한반도는 벌써 공산화되고 우리 국민은 세계 최악의 빈곤·위험 국가에서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북한·중국·러시아·일본에 둘러싸인 한국이 세계 최고의 군사력을 보유하고 한반도에 대한 영토적 야욕이 없는 미국과 군사동맹을 맺은 것은 천운에 가깝다.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 된 것도 한미동맹이다. 1960년대까지 미국이 한국에 제공한 군사원조는 매년 3억 달러에 달했다. 당시 한국이 사용하는 국방비의 87%에 해당했다. 한국은 국방비에 쓸 돈으로 경제 개발에 매진했다. 덕분에 전쟁으로 폐허가 된 최빈국이 세계 10위권 경제 강국, 군사 강국으로 성장했다.
세계 많은 나라가 한미동맹을 부러워한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에 한미동맹에 준하는 상호방위조약 체결을 요구하고 있다. 폴란드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미군 파견을 요구하고 미군이 영구 주둔할 기지를 만들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침공을 당한 것도 미국과 군사동맹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때 미국과 싸운 베트남도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위협이 커지자 최근 미국과 안보 파트너십을 맺고 미 항공모함을 받아들였다. 반면 1992년 미군을 철수시킨 필리핀은 이후 중국이 스프래틀리 군도 일부를 무력 점령하고 자국 어선에 총격을 가해도 속수무책 당하고 있다.
한미동맹은 70년간 수많은 시련을 이겨냈다. 북한은 동맹을 와해시키려고 집요한 공작을 해왔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내부에서 촉발된 도전도 있었다. 문재인 정부 시절 한미연합훈련이 4년간 중단됐다.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주한미군의 ‘완전 철수’를 검토했다. 양국 정부가 교체되면서 한미 핵협의그룹(NCG)을 만들고, 캠프 데이비드 합의를 통해 동맹이 제자리를 찾았다. 앞으로 누가 집권하더라도 동맹의 가치를 훼손할 수 없도록 제도화하는 것이 중요하다.